3-2. 벨 부등식과 실험적 검증 — 양자역학이 옳았다
철학을 물리학으로 바꾼 남자
1964년, CERN(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)에서 입자 가속기 설계를 하던 한 물리학자가 여가 시간에 논문 한 편을 쓴다. 이 논문은 단 6페이지에 불과했지만, 물리학 역사에서 가장 심오한 결과 중 하나를 담고 있었다.
그의 이름은 존 스튜어트 벨(John Stewart Bell, 1928–1990).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의 조용하고 겸손한 이 물리학자는, 거의 30년 동안 "풀 수 없는 철학적 논쟁"으로 방치되어 있던 EPR 문제에 결정적인 답을 제시했다.
벨이 발견한 것은 놀랍도록 단순하면서도 깊은 사실이었다:
아인슈타인이 옳다면 (숨은 변수가 존재한다면), 특정 실험에서 측정값들 사이의 상관관계는 반드시 어떤 수학적 한계를 넘을 수 없다. 그런데 양자역학은 그 한계를 넘는다고 예측한다.
다시 말해, 아인슈타인의 "숨은 변수 이론"과 양자역학은 같은 실험에 대해 다른 숫자를 예측한다. 실험을 해보면 누가 옳은지 판가름할 수 있다는 뜻이다.
30년 동안 "검증 불가능한 철학"이었던 논쟁이, 한순간에 "실험으로 답할 수 있는 물리학"으로 바뀌었다.
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강조하고 싶다. 세계관에 대한 논쟁을 수학 부등식 하나로 판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. 자연이 "이미 결정된 세계"인지, 아니면 "측정할 때 비로소 결정되는 세계"인지를, 실험실에서 숫자를 재서 알아낼 수 있다니!